크리스찬 타임스. 제1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우리를 도울 수 없는 무능력한 신을 버리다…”
우리 부부는 모두 불교를 믿는 가정에서 태어났고 굿을 하는 그런 가정에서 성장했으며 결혼해서도 불상앞에서 무릎이 닳도록 절을 하면서 세상의 부를 좇아서 열심히 사는 그런 부부였습니다.
첫아들을 낳고부터 시작되는 집안의 우환은 걷잡을 수 없었습니다.
큰아들이 열 살이 될 때까지의 일들은 생각하기도 싫은 사건이 많았습니다.
아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병원으로 업고 뛰어야하는 병약한 아이였고 일하는 가정부는 갑자기 정시착란을 일으켜 병원에 입원을 시키는 일도 있었고 그 다음에 온 가정부는 비관자살을 하여 온 집안을 피투성이로 만든 뒤 결국은 병원에서 숨을 거두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연달아 대학에 다니던 시누이의 자살과 또 친정 사촌 여동생의 자살 등은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으로 저에게 충격을 저 심장병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고생을 하고 있던 중에 남편이 하던 사업은 연달아 실패를 거듭하면서 결국은 빚더미에 나앉고 단칸 사글세 방으로 우리 네 식구는 모두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큰 좌절과 비참함 속에서 헤매던 우리는 동반 자살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가족들이 무슨 죄가 있냐고….. 나만 죽으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어느 날 한강으로 나갔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믿어왔던 부처라는 신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처음으로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우리 조상때부터 믿어왔던 부처는 우리가 이 지경이 되도록 도와줄 능력이 없는 신일까?” 하는 회의가 생기면서 “교회에 가면 하나님이 계시다는데 그 하나님은 어떤 신일까?” 하는 궁굼증이 밀려왔습니다. 그 때가 1979년 12월이었습니다.
새해가 되면 절에 가지 말고 하나님이 계시다는 교회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용솟음치고 있었습니다. 1980년 1월 첫 주일 아침에 교회에 가려는데 그 무엇인가 뒷덜미를 잡아채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주저앉자 버렸습니다.
“이 배신자야, 네가 어디를 가려느냐” 하는 소리에 섬짓 놀라 그날은 두려움에 떨다가 교회를 가지를 못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마음속에서 두 마음이 싸우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배신자야, 어디에 가려느냐”는 두려운 음성과 나는 하나님이 어떤 신인지 알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동시에 교차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주일이 되었을 때 마음을 단단히 먹고 교회로 가려는데 아무래도 두려운 음성 때문에 불안했는지 단칸방에서 서성거리는 나를 보고 남편은 “왜, 무슨 일을 저질렀어? 왜 불안해하고 초조한 모습으로 왔다 갔다 하느냐” 고 물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믿던 부처는 우리가 이 지경이 되도록 도와줄 능력이 없는 신이기에 하나님이 있다는 교회에 가보고 싶어서 그런다고 했더니 의외로 하나님을 믿느니 내 엄지손가락을 믿으라고 전에는 큰 소리 치던 남편이 “그래? 그럼 우리 같이 가보자” 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두 아들과 우리 부부는 난생 처음으로 나란히 동네 큰 길에 있는 감리교회를 나갔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던 남편은 예배가 끝난 후 남자 화장실에 갔다가 그만 하나님께 붙들리는 일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교회 화장실의 남자 변기가 얼마나 더럽고 냄새가 심하던지 “교회에 교인들이 많은데 화장실을 깨끗이 청소하는 사람이 없는가 내가 좀 닦아 주어야겠다” 고 마음을 먹고 저녁에 약국으로 가서 약품과 고무장갑 수세미를 사 두었다가 월요일 새벽에 교회로 달려가서 화장실 청소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화장실 청소를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강력한 부담감을 주셔서 교만했던 남편은 머리를 숙이고 악취를 맡으며 화장실 바닥의 찌들은 때들을 며칠 동안에 깨끗하게 청소를 해놓았습니다.
교인들이 알게 되는 것이 싫어서 새벽기도시간에 조금씩 닦았는데 마지막 날, 어떤 집사님에게 들키고 말았습니다.
결국은 목사님께서도 아시게 되어 목사님은 불신자가 교회에 첫 발을 디딘 순간부터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화장실 청소를 한다는 것이 귀한 일이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뜻과 섭리는 알 수 없지만 함께 신앙생활을 잘해보자고 하셨습니다.
그 후부터 실업자인 남편은 아침밥을 먹으면 교회로 달려가서 교회의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일로 기쁨을 갖게 되었고 목사님 심방을 가시면 심방가방을 들어드리면서 열심히 헌신하며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주일예배와 수요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4월 17일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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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 타임스. 제2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하나님께서 저를 사용해주신다면”
교회에 나가서 신앙생활을 한 지 8개월이 된 1980년 8월에 여의도 광장에서 큰 집회가 열렸습니다. “나는 찾았네 새 생명”이란 제목으로 C.C.C가 주최하여 김준곤 목사님이 대회장으로 진행된 큰 선교대회였습니다.
5일 동안 세계 각처에서 선교사님들과 성도들이 100만 명이 모였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목사님의 추천으로 낮에는 서울고등학교에 모여 각 교회에서 몇 명씩 온 성도들과 합숙하면서 성경공부를 하고 밤에는 여의도 광장으로 가서 안내위원과 헌금위원을 하게 되면서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나는 마지막 날(1980.8.15.)에 교회 권사님들을 따라 두 아들과 함께 여의도 광장으로 가게 되었는데 장마철이라 우산 담요 비닐을 싸들고 갔는데 솔직히 말해서 구경하러 갔었습니다.
TV 뉴스시간에 여의도 광장의 집회 광경을 보여 주었을 때 많은 성도들이 촉촉한 아스팔트에 앉아 비가와도 우왕좌왕하지 않고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곳에 가보고 싶은 충동으로 따라간 것입니다.
그 많고 많은 성도들 속에 남편도 있었지만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 마지막 시간에 선교사 서원기도를 김준곤 목사님께서 인도 하셨습니다.
첫 번째 “지금부터 1년 이상 해외 나가서 선교활동이나 주님의 일을 할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라.” 하셨을 때 11살 큰 아들 지훈이는 이 다음에 커서 목사가 되겠다고 벌떡 일어나 서원을 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남편도 “하나님 저는 교회에 다닌 지 8개월 밖에 되지 않아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사용하여 주신다면 저를 해외에 보내 주십시요”하고 일어나 서원을 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지금 서원하고 일어난 대학생들이 대략 10,000명 정도 되는데 이 사람들이 해외 나가서 선교 할 수 있도록 필요한 기도와 물질을 위해 헌신할 사람도 일어나라고 했을 때 일어섰던 11살 큰 아들은 “엄마, 우리는 망해서 돈이 없어 헌금은 못 하지만 일어선 나를 위해서는 기도할 수 있으시니까 엄마도 일어나세요.” 하면서 나의 팔을 잡아당기며 일으켜 세웠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들의 강요에 못 이겨 일어섰지만 왠지 두려웠습니다. 하나님께 서원을 하고 행하지 않으면 벌을 받을 것만 같았습니다.
순간 마음속으로 아들이 어려서 잘 모르고 목사가 되겠다고 서원을 했지만 크면서 변하더라도 용서해 달라고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집회는 다 끝나고 모두들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지만 왠지 가고 싶은 마음이 없고 그곳에서 철야를 하고 싶은 마음에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깔고 앉았던 심문지와 비닐조각들이 흩어져 있었고 여의도 광장의 밤바람은 조금 싸늘하기까지 했습니다.
두 아들은 깔아 놓은 비닐위에서 담요를 덮고 잠이 들었고 바람을 막아 주려고 우산을 펴서 놓아준 뒤 나는 여기저기에서 철야하며 큰소리로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얼마쯤 지났을까 내 머리 위에 누가 손을 대는 느낌이 들어 쳐다보니 긴 머리에 수염이 짙은 사람이 지긋이 웃으며 내려다보는데 나는 순간적으로 ‘예수님이신가’ 착각을 했습니다. 자세히 보니 남편이었습니다. 일주일 동안 수염도 깍지 않아 덥수룩했던 것이었습니다.
약속도 하지 않았는데 마지막 날에는 내가 여의도 광장에 올 것이고 철야를 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어서 동쪽 끝에서 서쪽 끝을 향해 철야하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피면서 찾았는데 결국 우리는 만났고 우리 네 식구는 함께 서원한 장소에서 철야를 했습니다.
그 후 교회에서는 불신의가정이 교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목사 선교사 중보 기도자가 되겠다고 서원을 했다며 웅성거렸습니다.
하지만 목사님께서는 이가정의 집안은 온통 불신자뿐이라 기도해 줄 사람이 없으니 우리 교회에서 모두 중보기도 해야 한다고 선포를 하셨으며 새벽기도시간에 우리 가정의 기도를 꼭 해주셨습니다. 나는 기도란 가만히 눈 감고 생각하는 것으로만 알았고 대표 기도하는 장로님의 기도를 듣고 아멘 하는 것으로만 알았습니다.
초 신자에게 신앙생활의 기초를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때까지 나는 무엇을 어떻게 기도하는지를 몰랐습니다. 4월 24일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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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 타임스. 제3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기도도 못하는 저에게 성령의 은사를 주시고…”
여의도 광장에서 서원을 했지만 기도 할 줄 몰랐던 저는 한 달 후인 9월 중순에 기도원에 갔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기도원이 무엇을 하는지 몰랐습니다.
따라간 곳은 오산리 순 복음 기도원 이였습니다.
그 기도원은 우리교회와 너무 다라서 어리둥절했고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천막으로 된 성전 안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가지각색으로 우는 사람, 춤추는 사람,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로 중얼거리는데 꼭 개구리 우는 것같이 들렸습니다.
너무 신기하고 희귀한 광경이어서 기도는 하지 않고 천막 안을 빙빙 돌아다니며 그 사람들 하는 모습을 구경만 했습니다.
밤이 깊어가니 9월 중순이데 조금 추웠습니다.
담요 한 장을 주어서 덥고 무릎을 꿇고 웅크리고 기도도 할 줄 모르기에 어서 빨리 새벽이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집으로 갈 생각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를 지났을까 갑자기 나의 몸이 공중으로 솟아오르는 듯하여 손바닥으로 마루 바닥을 만져보니 그대로인데 나의 느낌은 계속해서 올라가는듯 하더니 입안의 혀가 꼬이면서 소리가 투어 나왔습니다. 내가 구경하며 들었던 신기한 소리를 내가 내고 있었습니다.
손으로 입을 막으면 그치고 손을 떼면 수돗물 쏟아지듯이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계속 나와서 절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몸에서 땀이 나도록 계속 헐떡이고 있을 때, 같이 갔던 분이 내등을 치면서 “방언을 받았구나” 하는 것 이였습니다. 나는 방언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방언도 모르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방언의 은사를 주셨다고 의아해 하였습니다.
방언에 대하여 설명 해주고는 계속하여 기도하라고 하여서 또 다시 무릎을 꿇고 엎드리니까 그냥 쏟아지는 물소리 같이 방언이 숨이 차도록 터져 나왔습니다.
얼마쯤 지났을까 입은 방언으로 기도하고 있는데 꿈꾸듯이 내 눈에는 한 장의 그림이 보였습니다. 아름다운 푸른 초장에 나무가 군데군데 서있고 경사진 능선 위 파란 하늘에는 뭉게뭉게 흰 구름이 둥둥 떠 있는 아름다운 그림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서 어떻게 오셨는지 알 수 없이 예수님께서 하얀 세마포를 입으시고 나무 지팡이를 들고 그림의 중간 하단에 서 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옆에는 네 마리의 하얀 양들이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제가 하는 방언기도가 그림을 설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네 마리의 양들은 우리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께서 지팡이로 양들을 향해 함께 올라가자고 지시하시니까 양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예수님께서 능선위의 나무 있는 곳을 향하여 걸어가시는 그 길을 따라서 양 네 마리는 나란히 따라 올라가는 것 이였습니다.
나무 밑에 도착하였을 때 예수님께서는 양들을 향해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떠났던 그 곳을 바라보라” 고 하셨습니다.
처음 예수님과 양 네 마리가 있었던 그림의 하단은 오른쪽부터 왼쪽까지 셀 수 없는 수많은 양들이 가득히 있었는데 그 아름다운 그림을 보면서 너무 너무 신기했습니다.
꿈을 꾼 것이 아닌가 생각을 했는데 그것은 꿈이 아니라 환상을 본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훗날에 우리 가족 두 아들과 우리 부부가 해야 할 일 즉 영혼구원을 하여서 수많은 영혼들이 주께로 돌아올 것을 예언적으로 보여 주신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들의 강요로 세워져 중보기도자로 서원했는데 기도도 못하는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은사를 부어 주셨고 성령으로 충만케 하셨습니다.
기도원에서 내려올 때는 마음에 기쁨이 넘쳐서 형용할 수 없었고 발걸음은 가벼워 땅에 닿지 않고 나는 듯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 아름다웠고 신발로 밟는 땅도 아플 것만 같이 느껴졌습니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이 속삭이듯이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영적체험으로 심령에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 넘쳤고 이 세상 무엇보다도 만족함을 느꼈습니다. 영적만족은 부러울 것이 없는 심령으로 나를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5월 1일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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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 타임스. 제4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라는 마음을 주시며…”
기도원에서 성령체험을 하고 돌아온 날부터 무릎을 끓어 기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심령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새벽기도는 물론이고 밤9시만 되면 두 아들을 재워놓고 교회로 달려가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밤중에 교회에서 기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무섭고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어떤 시커먼 물체가 뒤에서 노려보고 있다가 시커먼 보자기로 덮어 씌우려 하는 것 때문에 무서워서 도저히 기도를 못하고 몇 번이나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구역 권사님께 말했더니 교회라고 해도 초 신자가 혼자 기도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같이 기도 하자고 하여서 매일 밤 9시가 되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발걸음을 재촉하셨습니다.
그 권사님은 내가 방언을 받은 것을 모르기에 구석에서 나 혼자 조용히 하나님과의 은밀한 대화 속에 영적기도는 계속되었고 기도시간은 자꾸만 늘어나서 2-3시간 또는 새벽 1-2시까지 하고 때로는 철야를 하면서 하나님은 많은 기도를 하도록 역사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신인가? 라는 질문을 갖고 시작한 신앙생활 이였는데 기도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속성에 대하여 알게 하셨고 우리 부부에게 많은 영적인 축복을 주셨습니다.
남편도 기도원에서 큰 은혜를 받고 충만한 가운데 교회에서 청년부장의 직분을 맡아 하면서 청년들에게 본 이 되는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1981년 7월 말에 주일학교 선생님들인 대학생들과 양평으로 수양회를 갔을 때 남편은 부장으로 책임을 갖고 떠났는데 사건이 생겼습니다.
대학교 1학년남자 청년이 실종되어 나타나지를 않아서 밤새도록 찾으면서 예수님께서 99마리의 양을 우리에 두시고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으셨던 그 심정을 가슴 깊이 느끼면서 산으로 들로 해매이며 찾았는데 결국은 그 다음날 개울 웅덩이에서 시체를 찾은 것입니다.
그 청년은 너무 더워서 개울에서 혼자 수영하다가 심장마비로 죽었던 것입니다. 그 일로 남편은 생명을 살리지 못한 안타까움으로 마음 아파하며 눈물로 가슴을 치며 괴로워 했습니다. 예수님의 안타까움을 경험한 사건 이였습니다.
두 아들은 주일학교에서 열심히 활동하면서 크리스마스 연극할 때에 예수님 역할도 잘하였고 어린이 성가제때도 얼마나 찬양을 잘하는지 너무도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우리 가족 네 식구 모두는 빠르게 신앙생활에 만족했고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생활은 여전히 어려운 가운데 먹고 사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을 우상의 집안에서 불러내어 믿음의조상이 되게 하시기까지 불같은 시험과 연단의 과정을 거치게 하셨듯이 우리 가정도 어려운 생활 속에서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의지하는 마음을 주시고 매일 밤 9시가 되면 교회로 가서 부르짖어 기도 하게하셨습니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미국에 가면 직업의 귀천이 없어서 막노동을 하더라도 잘 먹고 살수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미국에 가서 살고 싶어서 알아보았는데 갈 길이 없었습니다. 있다는 한 가지 방법은 위장결혼하여 가는 것이라고 하여서 우리부부는 그런 방법으로라도 가고 싶어서 가정법율사무소를 찾아가서 호적을 이혼하여 놓고 하나님께 기도를 더 열심히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의한 나쁜 방법으로 역사하시는 분이 아니심을 깨닫게 하여주셔서 10개월 만에 다시 호적을 재결합 해놓고 하나님의 전능하신 방법으로 미국에 갈수 있는 길을 열어 달라고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밤마다 습관대로 9시가 되면 교회로 달려가서 기도하던 어느 날 “사필귀정”이란 음성이 내 귀에 자꾸만 들려왔습니다. 그날 밤은 혼자 기도하고 있었고 밤12시도 넘어 통행금지시간이라 지나다니는 사람도 차도 없는 시간 이였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목사님께 말씀드렸더니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백지를 꺼내어 한문으로 쓰시는데
사필귀정은 일사 필요할 필 돌아올 귀 바를 정 이라고 쓰시고 모든 일들이 필요한대로 바르게
돌아온다는 의미이기에 곧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니까 기다려 보라고 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자매님 가정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무엇인가 축복해 주시려고 예비 하신 것 같다고 기뻐 하셨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니 기대가 되었고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역사 하시고 축복을 주실지 매우 궁굼 했습니다. 5월 8일 20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