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코리아

뉴스코리아 2003년 03월 08일 토요일

RV타고 미국 전역 전도여행

달라스 방문한 박승목-박영자 집사 부부

결단은 힘들지만 결단 후의 풍요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고 은혜롭다는 박집사 내외는 오늘도 순종한 자에게 따르는 하나님의 축복을 전파하며 다닌다.

마지막 때에 주님께서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하였느냐’고 물으셨을 때, 자신있게 ‘조금전까지 주님을 증거하다 왔습니다’라는 대답을 하고 싶다는 박집사 내외의 삶을 우리 각자의 삶에 그대로 투영해보는 시간이 필요할 듯 싶다.

글 •최윤주 기자

7년동안 박영자 집사를 괴롭히던 병마는 한순간에 예수의 이름으로 물러나 버렸다. 지금도 박혀있는 금침1,000개는 박영자 집사의 몸서리치는 병마와의 사투를 증명하지만, 묘자리까지 알아보던 초췌한 모습이라고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지금의 건강한 모습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뚜렷히 증명하고 있었다.

“하루 일하고 하루 먹는 힘든 이민생활을 영위하면서도 만7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제 병구완을 하느라 고생한 남편인데 91년 6월에 간암선고를 받았어요.

제가 말씀으로 치유 받은지 20일 만의 일이었지요”(박영자 집사)

박승목 집사는 “간암선고 후 어느 날 ‘내 몸을 희생했건만 너 무엇 하느냐, 네 죄를 대속했건만 너 무엇 하느냐’는 찬송가 185장을 부르다가 통곡을 하게 됐습니다.

하나님의 이 질문에 전 대답할 말이 없었습니다.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으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에 주님 앞에서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대답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노방전도가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는 순례자 삶의 첫 걸음이 되었습니다.”(박승목 집사)

박승목 집사는 간암선고를 받고도 병원에 가지 않았다.

휴식을 취하라는 의사의 말을 뒤로 한 채 낮에는 일을 하고, 퇴근을 하면 부부가 함께 거리로 나가 전도지를 돌렸다.

육체의 휴식을 취하기에는 영혼구원에 대한 이들 부부의 갈망이 너무나 간절했다.

죽음을 내어놓고, 생명을 내어놓고 시작한 ‘하나님께 드릴 대답’에 대해, 하나님은 치유의 은혜를 넘치도록 부어주셨다.

그로부터 정확히 11년후인 2002년 6월,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8개월 전에 이들은 집마저 버렸다.

하루 종일 흘린 고된 노동의 땀을 묵묵히 받아줄 수 있는 넓디 넓은 세상 속의 작은 내 땅은 아무런 대가 없이는 결코 버릴 수 없는 귀중한 재산이다.

그러나 박승목·박영자 집사는 그렇게 소중한 집을 버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세상 속에 존재하는 자신을 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버림’으로 인해 ‘새 생명’을 얻었다.

가진 것 모두 버리고 예수 증거

쉽게 번 돈으로 산 집도 아니었다.

너무나 가난해서 밤에 깡통을 줍고 마켓 쓰레기통에 버려진 야채와 과일을 주워다 주린 배를 채우며 번 돈이었다.

암선고를 받았어도 하루 일하지 않으면 그날 먹고 살 일이 암담했던 때를 상기하면 RV 하나에 몸을 싣고 ‘복음전파’를 나서는 길 뒤편에 많은 아쉬움들이 남아있을 법도 한데…

“재산을 버린다는 것에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무엇보다 나의 Job을 버리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물론 사랑하는 아들들과 그 가족을 뒤로 한 것 또한 힘들었다구요.”

지금까지 샌디에고, 라스베가스, 아리조나, 뉴멕시코를 거쳐 텍사스에 오게 됐다.

순전한 ‘자비량 선교’이기 때문에 식사는 누룽지와 99센트짜리 햄버거도 임금님 수라상 뺨치는 과분한 식사였다.

간혹 하나님께서 박집사 내외에게 주신 기적같은 사랑을 증거하며 ‘간증 사례비’라도 받게 되면 개스비와 핸드폰 사용료 등의 최소 생활비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사역을 위한 씨앗으로 다시 되돌려 드렸다.

담대히 순례자의 길을 걸어가는 박승록·박영자 집사 내외에게 ‘편안함’과 ‘안락함’은 전도여행에 해가 되면 해가 되지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

“대접받고 사례비 받는 것은 전도여행의 본질에서 이탈하는 것”이라는 박승목 집사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들 내외는 어느 곳을 가든지 식사제공과 잠자리 제공을 마다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심지어는 전도여행 중 아들 집에 들르게 되었을 때 조차 밤 늦게까지 아들 집에서 이야기 꽃을 피우다 잠은 길에 파킹해 놓은 RV에서 잠 잘 정도.

하루 이틀에 끝날 여행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도움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강한 믿음이 이들 내외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단단한 버팀목이 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지금껏 하나님께서 너무나 풍성하게 채워주셨습니다.

최저 생계비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필요 없는 저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주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한 영혼’을 만나는 일입니다.

우리 부부가 지나가고 머무르는 그 곳에서 오병이어의 기적같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나타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박집사 내외의 사역에는 독특함이 있다.

한번 간증집회를 인도하고 다른 사역지로 떠나는 방식을 이들은 지양한다.

적어도 한 지역에서 한 달 정도 머무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집회를 마친 후 그 지역에 머무르면서 목사님께서 소개해 주시는 분들이나 저희에게 상담을 원하는 성도 분들을 직접 방문합니다.

또 교회의 목장모임이나 전도와 관련한 세미나 인도, 이혼 위기에 있는 가정 상담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모든 일에 도구로 쓰여 집니다.

사실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큰 은혜를 받는 건 저희이기도 하구요.

모든 이에게 도전이 되는 전도여행

그러나 처음부터 전도여행이 순조로웠던 건 아니다. 신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유명한 집회 인도자도 아닌 이들 부부가 집사의 직분으로 간증집회를 인도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또한 “전도여행을 구실삼아 RV타고 호화로운 미주순회를 다니는 사람” 쯤으로 인식하는 선입견 또한 이들 부부를 힘들게 했다.

불신자 뿐 아니라 교회 내의 거듭나지 않은 영혼들까지도 끌어안고 함께 울며 함께 웃어주는 이들의 전도여행은 8개월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만큼 ‘적지 않은’ 결실을 맺어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처음에는 집사라는 직분이 집회 인도의 걸림돌(?)이 되었지만 이제는 목회자들에게 도전을 던지는 ‘장점’이 되었다.

“한번은 저희의 간증이 끝난 후에 전도를 소흘이 하신 목사님께서 기도를 하셔야 하는데 울음 때문에 못하시고 회개하셨을때 결국 목사님을 위시해서 온 교회가 눈물바다를 이루었고 목사님께서는 ‘우리도 저렇게 살자’며 성도들을 북돋우셨지요. 저희의 결단이 목사님들께 도전이 되는 것 같아 하나님께 영광을 드렸답니다.”

(고난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

23년 이민생활 중에 3분의 2는 가난과 병에 시달리고, 나머지 3분의 1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헌신한 이들은 이민 초기에 고생했던 ‘가난과 병’마저 “고난이 네게 유익하다”는 성경 말씀처럼 전도사역의 중요한 한 요소가 된다고 말한다.

아픈 자, 가난한 자, 억울한 자, 마음에 고통이 있는 자 등 전도여행 중 만나는 모두에게 자신들의 경험으로 다가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이라고 설명하는 박집사 내외의 온화한 웃음은, 가시밭 일 것만 같은 그들의 자비량 전도순례가 성령의 도우심을 체험하는 살아있는 은혜의 현장임을 느끼게 해 준다.

“결단은 힘들지만 결단 후의 풍요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고 행복하다”는 박집사 내외는 오늘도 순종한 자에게 따르는 하나님의 축복을 전파하며 낮밤 없이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일에 전력을 다한다.

마지막 때에 주님께서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하였느냐’고 물으셨을 때, 자신있게 ‘조금 전까지 주님을 증거하다 왔습니다.’라는 대답을 하고 싶다는 박집사 내외의 삶을 우리 각자의 삶에 그대로 투영해보는 시간이 필요할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