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드디어 영주권을 받고…”
영주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이민 국에 고발하겠다는 위협을 받으니 스트레스로 병을 얻어 고통스러웠지만 기도하기만 하면 마음에 평안히 찾아 왔습니다.
그동안 영적 체험은 많이 했지만 말씀에 바로 서지 못함 때문에 환경으로 인해 실망하고 좌절감으로 고통스러웠습니다. 성경을 읽기 시작을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 하시니라” (히브리서 13:8) 고 말씀하셨는데 언제는 출애급 시켜주듯이 급하게 20일 만에 미국에 오도록 역사 하신 하나님께서 지금은 병이 들어 죽어가는 것을 가만히 보고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실텐데……
왜 내가 이렇게 병으로 고생하는 것일까?
하나님의 뜻과 섭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성경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어느 날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정금같이 나아오리라.”(욥기 23:10)는 욥의 고백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로마서 8:18) 말씀을 묵상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정결케 하시고 깨끗하게 하셔서 훗날에 쓰시기 좋은 그릇으로 다시 빚으시고 계시는 하나님의 연단이라고 생각이 되어 오히려 기뻤습니다.
고통스러워서 잠이 오지 않을 때는 하나님께서 이 밤에 모든 사람이 자고 있으니까 나하고 대화를 하고 싶으셔서 깨어 있도록 하시는 것이라고 위로 받았습니다.
말씀에 바로 서지 못한 나에게 말씀 읽는 시간과 기도하는 시간을 주신 것이라고 생각이 되어져서 말씀을 붙들고 울고 또 울며 많은 회개를 했습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히브리서12:6)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히브리서12:8) 하나님께서는 나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함에 참예케 하시기 위하여 징계하시고 연단하신다고 생각이 되어져서 오히려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계획은 이렇게 아프다가 그냥 죽는 것이라 고는 생각 되지 않았습니다.
대장 경련으로 시작된 병이 합병증 되었고 순환이 되지를 않아서 독가스가 임신 8개월 된 것같이 배 안에 들어찼고 머리카락만 아프지 않고 온몸은 통증으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옆에 사시는 미국 목사님은 고통스러워하는 나를 부축하여 이 병원 저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뚜렷한 병명도 찾지 못한 채 뒹굴며 고통 가운데 신음하고 몸부림치며 불면증까지 생겨서 2년 동안 신경 안정제를 먹었습니다.
그 당시 San Diego에는 한국 의사가 없었습니다. 한국 의사를 만나려면 오렌지 카운티 까지 가야했는데 가는 중간에 검문소가 있었습니다.
영주권 조사 할 때에 영주권이 없는 사람 붙잡히면 곧바로 추방하는 때였으므로 두려워서 가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은 용기를 내어 나를 데리고 병원을 찾아 갔었지만 별 도움을 받지 못한 채 날마다 밤마다 하나님만을 찾으며 기도하면서 말씀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인 거울에 비추어서 지난날에 지었던 우상숭배를 했던 죄와 나의 못된 죄들과 못된 습관들을 낱낱이 회개를 했습니다.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 사대 까지 보응 하리라.”(출애굽기34:7하) 말씀을 읽으며 나의 사랑하는 아들들에게 부모의 죄를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통곡하며 또 회개를 했습니다.
회개하면서 눈물로 부른 찬송은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구주와 함께 나 살았도다. 맘 속에 시험을 받을 때와 무거운 근심이 있을 때에 주께서 그 때도 같이 하사 언제나 나를 도와주시네. 뼈아픈 눈물을 흘릴 때와 쓰라린 맘으로 탄식할 때 주께서 그때도 함께 하사 언제나 나를 생각하시네. 내 몸의 약함을 아시는 주 못 고칠 질병이 아주 없네. 괴로운 날이나 기쁜 때나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네. 언제나 주는 날 사랑하사 언제나 새 생명 주시나니 영광의 기약이 이르도록 언제나 주 만 바라봅니다.”
고통의 터널을 지나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정을 궁휼히 보시고 위로와 사랑을 부어 주셨습니다.
1987년7월3일은 정말 잊을 수 없는 날이고 잊을 수 없는 고마운 분들을 생각나게 하는 날입니다. 얼 헤드릭 미국 목사님과 최재천 목사님의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우리 가족은 영주권을 받는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영주권 받은 그 다음날은 미국의 독립 기념일 최고의 축제로 불꽃놀이를 했습니다.
San Diego 바닷가에서 하늘 높이 퍼지는 그 아름다운 형형색색의 찬란함은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우리 가족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영주권을 받은 것을 축하하여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눈물로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영주권 때문에 고민하다가 병까지 얻어 고생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출애급 시켜주시듯이 미국 땅을 밟게 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미국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영주권도 주실 것을 믿는 믿음이 우리에게는 있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니”(히브리서11:1)의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기도하며 살았기에 약속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신실하게 약속을 지켜주셨고 역사 해 주셨습니다.
영주권을 받았어도 나의 병은 조금도 낫지 않고 악화 되었습니다.
결국은 묘지를 사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에 의사는 환경에서 온 스트레스로 인한 병이므로 환경의 변화가 도움이 될지 모르니까 한국으로 가든지 아니면 어디든지 이사를 가라고 종용했습니다.
남편은 벌어온 돈마다 병원비로 썼기 때문에 갈 곳도 없었지만 이사 비용마저 없었습니다.
그 당시 남편은 한 달에 2400불이나 되는 많은 돈을 직장 주인으로부터 받았습니다. 그 주인은 내가 Home Sick에 걸린 것 같다고 아내와 함께 지내라고 토요일도 쉬도록 해주면서 많이 사랑하며 돌보아 주었습니다.
주인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나의 병 때문에 그 좋은 직장을 뒤로 하고 남편은 이사 갈 결심을 한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곳이란 미국에 처음 와서 5개월 살았던 L.A 북쪽 Northridge로 7년 만인 1989년 가을에 제2의 이민 생활을 떠나야 했습니다.
제2의 고향과 같은 아름다운 곳 San Diego 와 정들었던 교회의 사랑하는 성도들과 헤어지는 것이 무척 아쉬웠습니다. 다니던 교회와 성도님들이 이사 갈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을 주면서 빨리 이곳을 떠나라고 재촉하며 병이 완쾌되면 다시 와서 함께 살 자며 눈물로 위로하여 주었습니다.
2012년 6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