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에 비교하면 너무나 왜소해지고 부족한 우리가 감히 바울의 그 열정을 좇아가려고 흉내라도 내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저녁에 김 집사님과 우리부부는 기독교 교인들에게 큰 영향력을 주는 일에 종사하는 장로님 부부와 만나서 대화를 했습니다.
그 분들은 많은 상처 때문에 안으로 파고든 아픔들로 인해 우울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신앙 상태는 체험 신앙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 보다는 상황과 사건 때문에 마음이 무너져 사단의 영향력 아래 눌려서 기쁨과 감사가 없었습니다.
기도와 찬양을 할 수 없는 깊은 늪에 빠져있던 상태였습니다.
그분들과 계속 대화를 하는 가운데 성령 안에서 치유가 일어났으며 앞으로의 비젼까지 새롭게 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의 사역도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말씀을 전파하는 것인데 방해하는 사단의 계략에 속아 있었을 때 만남을 주셨고 해결되어지도록 성려님께서 역사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 4:7)
많은 사람들이 영혼의 목마름을 호소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해서 채워지지 않는 갈급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도는 내게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는 것입니다. 사소한 만남도 영적인 눈을 뜨면 복음 전할 기회임을 알게 되고 사람을 살리는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침체되어 있는 자들에게 힘을 주게 되고 고통 받는 자들에겐 복음을 통해 답을 주는 것이 전도입니다.
많은 교회들이 전도에 열심을 내지 않는 안타까운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전도는 하지 않으면서 선교는 열심히 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전도 하지 않는 이유를 물어보았을 때 아연실색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선교는 쉽고 전도는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각 촌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제자들이 나가 각 촌에 두루 행하여 처처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누가복음 9:6)
우리를 초청하여 집회를 해야 할 교회 목사님의 어머님이 위독 하시다고 하여 갑자기 한국을 가시고 계시지 않았지만 장로님들의 안내로 집회를 했습니다.
얼마나 뜨겁게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지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간증을 할 때 많은 분들이 아멘으로 화답하며 은혜와 감동이 성전 가득 넘쳤습니다. 우리의 간증 들으면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눈물로 회개하며 결단하는 성도들도 있었습니다.
전도에 대한 부담감을 갖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막연했는데 하나님께서 꼭 필요한 시기에 우리를 보내 주셨다고 감사했습니다.
사모님은 유방암으로 수술 받아야 되는지 망설이고 있었는데 간증을 듣고 용기를 얻었으며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실 것을 믿는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개인적으로 만나기를 원해서 김 집사님과 우리는 계속 낯 시간에는 서로 바쁘게 복음의 현장을 뛰어 다녀야 했습니다.
김 집사님도 간증과 개인 전도로 많은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어떤 자매가 복음을 듣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을 영접하던 그날 그 곳에 함께 있던 장로님이 슬며시 일어나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집주인 남편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오다가 현관 바깥에 쓰러져 있는 장로님을 보게 된 것입니다.
급하게 911을 불렀는데 6명이 구급차를 타고 와서 각자의 맡은 일을 순식간에 처리하고 병원 응급실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모임 중에 있던 모든 사람이 한마음으로 간절하게 그 장로님의 회복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 장로님은 일 년 전에 심장수술을 했다고 해서 모두들 많이 놀랐는데 다행이도 급채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단은 언제나 기뻐하도록 그냥 두지 않고 방해를 하고 불안하게 했습니다.
영적으로 방해를 할뿐만 아니라 감정적으로 사소한 일에 예민하게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연약하여 쓰러질 수밖에 없지만 능력의 하나님을 의지하여 승리하며 날마다 나아가고 있습니다.
10일 동안 함께 동역하던 김 집사님이 메릴랜드로 떠나야 했습니다. 주안에서 복음의 동역자로 맺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기쁨과 감사함으로 복음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떠나는 것입니다.
또다시 만나 동역할 날을 약속하고 굳은 악수와 눈물의 포옹을 하고 헤어지기 아쉬웠지만 기쁜 마음으로 손을 흔들어 배웅을 하고 공항을 나오는데 감사와 감격이 넘쳤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로마서 1:16)
이 놀라운 복음은 듣고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뿐만 아니라 인생이 바뀌고 가정과 가문이 바뀌는 놀라운 복입니다.
똑같은 복음을 듣고 반응하는 것은 다르게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 이 기쁜 소식을 듣고 믿는다고 하면서도 덤덤하고 감격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의 감격을 어느 순간 잃어버린 것입니다. 축구 선수가 뽈 하나 넣어 기뻐하는 것만큼도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쁜 소식을 전하지 않습니다. 복음에 기쁨도 감격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복음증거를 위해 나의 생명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나로 인해 예수 믿은 사람들이 누구인지 최근에 전도해본 경험이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