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도 못 막는 복음 전하는 그 길”
시카고의 어느 교회에서 3일 간의 집회 요청을 받고 그곳에 갔습니다.
집회를 하면서 성도들이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데도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셔서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목사님을 나가시게 모의하는 중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의 분위가 평안하지 않은 상태에서 간증집회를 했는데 사단은 가만히 있지 않고 결국엔 일을 저질렀습니다.
집회 마지막 날에 누구인지 모르지만 교회 파킹랏에 세워 둔 RV 를 향해 총을 쏴서 벽에 구멍이 뚫렸습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지 않고 RV 벽면을 뚫고 들어왔기 때문에 피해는 없었습니다.
Police 들이 연락을 받고 여러 명이 와서 조사를 하고 RV 안에 들어와 부엌 싱크대 밑에 떨어진 22구경 총알을 찾아 가지고 갔습니다.
탄알을 처음 보았지만 마음은 담담했으며 불안하지도 두려움도 없었습니다.
권총으로 RV의 벽은 뚫을 수 있었지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우리의 열정은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서 8:35,38-39)
권총의 위협으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의 길을 방해하는 악한 세력이라 볼 수 있었습니다.
2002년부터 7년 넘게 복음 전하러 다니는 가운데 RV 유리창에 돌을 던져 깨지기도 했고 문짝을 부수기도 했으며 물건을 훔쳐가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총을 발사하는 위협은 처음 당하는 일이었습니다.
경찰이 수사를 하겠지만 어떠한 이유에서 그랬더라도 그 사람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복음의 전진을 계속해 나갈 것을 더욱 더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의 심각한 문제로 고민하는 어떤 집사님을 통해 자세히 알게 되었고 성령님께서 간섭해 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이사야 50:4)
그동안 주일학교와 한국학교를 잘 이끌어 가고 있었는데 다 고만 두고 교회를 떠나려고 마음 먹고 있었던 차에 하나님께서 우리와의 만남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교회의 문제에 옳고 그름을 대해서는 어느 한쪽의 말만 듣고 결정할 일이 아닌 것입니다.
아직도 믿음으로 바로 서지 못한 교인들은 사람들이 하는 말에 우왕좌왕하게 마련이지만 믿음이 견고한 지혜로운 사람들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교회는 분쟁이 나지 않도록 오직 진리와 거룩함과 사랑으로 주님의 순결한 몸으로 섬기고 세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분쟁이 생기는 것은 사탄이 좋아할 일이지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는 특히 틀림과 다름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살인 간음 도적질 거짓말 등은 틀림 즉 죄이기에 용납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문화적 차이 시대적 차이 관습의 차이 등은 다름이기에 서로 용납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내의 갈등은 성경의 기초위에서 해결해야 정의와 평화를 이루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 집사님은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 말씀으로 은혜 받으며 성도로써 맡겨 주신 일에 충성하고 잘 감당하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디모데전서 1:12)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 여인들의 죽음의 수용소인 독일의 라벤 부르크 처형장에서 발견된 기도문입니다.
“주님, 좋은 뜻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만 기억하지 마시고 악의 품고 있는 사람들도 기억하소서. 하지만 그들이 저희에게 준 고통만을 기억하지 마시고 그 고통으로 인해 저희들이 얻게 된 열매인 저희들의 우정과 충성심, 겸손함과 용기, 관대함
그리고 이 모든 고통을 통해 성장한 저희들 마음의 위대함도 생각하소서.
그리하여 마지막 심판 날에 저희가 맺은 이 모든 열매들이 저희에게 고통을 준 그 사람들을 위한 용서의 제물이 되게 하소서“
용서는 그 말이 갖고 있는 아름다운 의미와는 달리 실제로는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강한 자만이 용서할 수 있고 나를 힘들게 했던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자만이 용서할 수 있으며 승리한 자만이 제물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분쟁과 충돌로 교회 사역에 마찰을 빚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해결을 하지 못하고 교회 분열이라는 최악의 방법을 선택하지만 그 결과로 두 교회가 모두 성장 발전한 예외적인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쟁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법정 소송으로 달려가 끝까지 싸움으로 피차 원한 관계로 끝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고린도전서 1:10)
어떤 목사님이 기독교인들의 싸움에는 신약과 구약으로도 되지 않고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쥐약이다 라고 까지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마음이 씁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