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 타임스 연재. 제176회.

“주님은 고난이라는 용광로를 사용하신다.”
영주권이 없어서 고생을 하시는 목사님을 3 년 전에 만난 후 연락을 하지 못하다가 살고 계신 지역을 지나게 되어 보고 싶은 마음에 전화 를 했습니다.
큰딸과 작은 딸 그리고 아들이 있기에 고만 낳고 싶었는데 하나님께서 가정에 기쁨을 주시려고 또 막내딸을 주셨다고 생각해서 이름을 기쁨이라고 지으셨답니다.
영주권도 없고 목회도 잘 되지를 않아 생활고 때문에 많이 고생을 하시고 있는 중에 대학을 가야 할 큰 딸은 공부를 잘해서 꼭 보내야 하는데 암담하다고 하셨습니다.
3년 전에 함께 먹었던 월남국수 집으로 모두 나오시라고 했는데 사모님은 일 하시느라 나오시지 못하셔서 우리끼리만 맛있게 먹었습니다.
자녀들은 그동안 많이 커서 못 알아볼 정도였고 순진하고 명랑하게 구김살 없이 잘 자란 것이 대견스럽게 보였습니다.
부모님의 고통과 어려움을 알고 자기들이 알아서 집안일을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것이 요즈음 아이들답지 않게 사춘기도 없이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먹성이 한참 좋은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먹이고 싶은 맘이 들어 얼마 되지는 않지만 기쁨으로 사랑의 봉투를 전해 드렸습니다.
사모님이 일하시는 가게에 갔는데 흑인들이 많이 오는 샤핑몰이 불경기라서 그나마 장사가 되지 않아 자꾸만 가게들이 문을 닫는다고 했습니다.
같이 장사를 하는 분의 집을 담보로 시작한 가게인데 여간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날씨는 추워지기 시작하는데 내 마음은 더 춥게 느껴져 눈물이 났습니다.
우리 가정도 82년 이민 초기에 영주권 없고 돈 없는 상태에서 밤이 되면 미국 마켓 뒤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려진 야채와 과일 그리고 고기 덩이를 주워다 먹으며 살았습니다.
입어야 할 옷가지들은 가라지 세일이나 스와밋에서 사 입으며 살았어도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고생을 하며 살던 그 때에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주었다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려움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고난의 의미와 승리의 삶을 살아 갈 수 있는 오직 예수님만 붙잡았습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로마서 5:3-4)
이 고난을 통해서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복을 바라보며 마음에 걱정 근심하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고난과 문제를 바라보면 낙심되지만 예수님을 바라보면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어떠한 고통도 괴로움도 어려움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28)
왜 어려움을 당하는지 알 수 없지만 먼 훗날 모든 어려움을 통과한 후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을 이루셨는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위대한 찬송작가인 파니 제인 크로스비는 태어나서 6주 만에 눈병을 앓게 되었는데 그만 치료를 잘못해서 장님이 되어 버렸다고 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은혜를 체험한 후 평생 고통가운데 살았지만 원망과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며 살았더니 하나님께서 장수의 복을 주셔서 95살 까지 사셨습니다.
그리고 찬송을 짓는 특별한 은사를 주셔서 세상 떠날 때까지 수많은 찬송시를 쓰셨습니다.
우리들이 잘 부르는 “인애하신 구세주여” “나의 갈길 다가도록”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나의 영원하신 기업” 등 아주 주옥같은 은혜의 찬송들을 그 분이 다 지었습니다.
절망하고 불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도 어떻게 이렇게 감사의 삶을 살 수가 있습니까? 하고
물어 보았더니 고백하기를 “감사의 조건이 아주 많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감사할 수 있습니다“
내가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이 놀라운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평생을 감사하고 감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준비된 일꾼으로 쓰임 받을 수 있는 인격의 소유자가 되기 위해 주님은 고난이라는 용광로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정금같이 나아오리라”(욥기23:10)
고난은 하나님이 우리를 빚으시는 과정의 일부입니다.
고난을 통과한 후에 우리 주위에 고난당한 이웃을 돌보는 사랑의 사도들이 되는 것입니다.

씁쓸한 마음으로 RV에 돌아와서 추운 겨울 춥지 않게라도 해 드리고 싶어서 가지고 있는 옷들을 꺼내서 주섬주섬 비닐자루에 넣었습니다.
남들이 입으라고 준 것도 있지만 겨울에 입으려고 얼마 전에 사두었던 스웨터도 챙겨 놓았고
두터운 겨울 잠바를 옷걸이에 걸어 드리려니 마음이 행복했습니다.
월요일 오후에 사모님을 만나려고 찾아 갔는데 사모님은 계시지 않고 백자매가 있었습니다.
백자매는 가게 때문에 교회는 나가지 못하고 요즈음 여호와 증인한테 성경공부를 3개월째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이야기를 하는데 남들이 하는 신앙생활을 자신도 하고 싶지만 시간이 허락지 않아 못했는데 어떤 사람이 시간 있을 때 성경공부 하자고 해서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하마터면 귀한 영혼이 이단에 끌려가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곳에 보내셔서 한 영혼 구원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자들이 자력으로 구원을 이루어 보겠다고 하면서 도달하는 곳이 이단입니다.
기독교는 은혜의 복음이고 이단은 인본주의가 판을 치는 곳, 행위구원론을 가르치는 종교 집단이기에 여호와 증인은 사상이라고 합니다.
스스로 노력해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예수님이 오셔서 대신 죽어 주시고 피 흘려 속죄해 주신 그 은혜를 마음으로 믿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백자매는 복음의 기쁜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순진한 양들을 이리의 소굴로 끌고 가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고 슬펐습니다.
이단에 끌려가고 있는 영혼들이 우리 주위에 너무도 많은데
믿는 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