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특별기획

중앙일보 특별기획 2002년 10월 23일(수요일)

RV타고 미국돌며 ‘전도 여생’

글 •김인순 기자

내년 환갑 맞는 박승목-영자 부부

이민초기 갖은 고생… 부부 모두 난치병 걸려

찬송 부르던 중 눈물 쏟아지며 완치 기적 체험

“하나님이 돌려준 생명 하나님 전하는데 써야죠”

가진 전 재산을 정리하고 RV를 구입해 미전지역을 다니며 전도하겠다는 이색적인 평신도 전도 부부가 있다.

박승목-영자 부부가 그 주인공. 43년생 동갑인 이들 부부는 남은여생을 RV를 타고 다니며 하나님을 전할 각오로 올 6월1일부터 전도 여정에 올랐다.

“이 RV는 우리 부부의 집이며 교회이기도 하지요.”

지난 4개월 동안 남쪽 샌디에이고에서 출발해 지금 이곳 LA까지 북상하면서 40명(한명은 중국인)의 마음에 하나님의 존재를 심어주었다.

“초보자(?) 로서는 생각보다 큰 성과” 라는 박씨는 “오랫동안 우리 부부가 똑 같은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움도 있었는데 이번에 만난 사람들을 통해 우리가 잘 결정했다는 확신을 얻게 됐다”고 말한다.

그러나 평신도로서 전도를 하려니 생각보다 ‘벽’이 많더라는 것.

굳이 교회 내에서의 장로니 전도사니 하는 타이틀은 중요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막상 현장에서 부딪치니 어려움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박씨 부부가 부딪치는 ‘벽’은 밖이 아닌 오히려 교회 안에 더 많았다.

“저희의 전도대상은 전혀 하나님을 모르는 외부 사람도 해당되지만 교회내의 믿지 않는, 즉 확신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저희가 RV를 타고 어느 지역에 들어가 한인교회를 찾아 목사님께 아직 복음을 알지 못한 교인이 혹씨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할 때 대부분 반응이 냉랭했어요.:

머리가 희끗한 결코 젊지 않은 부부가 차를 타고 다니며 전도를 하는 것을 보고 어떤 목사님은 대놓고 “이단이 아니냐?”고 묻기까지 했다.

그러나 어떤 목회자는 “당신 말이 맞다. 교회 밖보다도 교회 내에서 구원의 확신이 없는 교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더욱 급선무”라며 교회에 나오면서도 뚜렷한 신앙관이 없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라고 인정했다.

박씨 부부의 전도방식은 ‘방식이 따로 없다’는 것이 방식이다.

왜냐하면 전도는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박씨 부부 모두가 직접 체험했기 때문.

“우리가 자랑할 것은 우리의 못남과 약함, 그리고 예수님밖에는 없어요, 우리는 그저 차를 몰고 가다가 차가 머무는 곳에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사람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건네죠.” 물론 되도록이면 한인을 찾는다.

대부분 ‘미친 사람 취급’하며 대꾸도 안하고 피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러나 개중에는 관심을 갖고 마음을 열려는 ‘기미’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상대에게 관심이 될수있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때론 전도할때 예수님 믿으라고 바로 말할때도 있으나 먼저 ‘인간다운 따뜻함의 나눔’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이들 부부는 알고 있다.

“예수님도 우물가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 좀 주시오’ ‘당신 남편은 어디에 있소?’ 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대화로 시작 하셨지요”

박씨가 이야기하게 되는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이민생활을 통해 많은 상처를 받았거나 설사 물질적으로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어도 마음으로는 외로워 행복하지 못했다.

박씨 부부는 전도차원을 떠나 먼저 이들과 힘든 이민생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쉽게 공감대를 이룰 수 있었다.

그이유는 박씨 부부 역시 누구보다 이민생활의 모든 쓴 고통을 체험한 당사자들이기 때문.

박씨 부부는 82년 두 아들을 데리고 처음 미국에 왔다.

도착지가 샌디에이고. 학생비자로 왔기에 학교에 등록해 놓고 당장 먹고 살 직장을 구해야 했다.

이때 한인이 그 지역의 미국인 사업가가 벌이는 공사장을 소개해주어 땅을 파고 페인트도 하고 하수도도 고치는 등의 막노동 일자리를 잡게 됐다. (박씨 역시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 나름대로 사업을 하던 사람으로서 노동일이 힘에 겨웠다.)

그러나 영주권이 없어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미국인 밑에서 일 한지 7개월이 됐을 때 미국인이 신뢰한다며 관리자를 맡으라고 제안했다.

이 미국인은 박씨의 신분을 알면서도 편의를 보아 준 것. 그러나 정작 문제는 ‘내부의 적’이었다. 박씨가 잘 풀리는 것을 안 좋게 본(?) 한인이 이민국에 고발하겠다고 위협했다.

하루 하루를 바늘방석에 지내던 중 드디어 심약한 박씨의 아내가 병이 들었다.

병원에서 진단은 ‘스트레스 였다’, 등을 비롯해 온 몸의 신경이 딱딱하게 굳어 꼼짝을 못할 정도였다. 또 내장이 뒤틀려 깨스가 차서 배가 임신한 사람처럼 부어 올랐다.

이때가 84년, 미국 온지 2년째 되던 해였다.

대부분 수입이 병원비로 들어가 생활은 궁핍해갔고 병세는 더욱 악화됐다.

결국 88년 의사는 “이러다가는 죽을지도 모르니 환경을 바꿔 이사 갈 것”을 권했다.

박씨는 미국에 아무런 연고자도 없었기 때문에 무조건 5번을 타고 북상하다가 내린 곳이 바로L.A 북쪽 Northridge 였다..

다시 일자리를 찾자니 더 힘이 들었다.

이것 저것 닥치는대로 일했다. 페인트, 플러머, 건축 공사장 일.

그리고 식품비를 절약하기 위해 밤 10시쯤 되면 인근 슈퍼마켓 파킹장에 가서 하루에 팔고 남은 빵과 감자 등을 버리는 것을 줏어와 아이들 모르게 냉장고에 집어 넣곤 했다.

그러던 중 91년 세미나에 갔던 박씨의 아내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빌립보 2장 9~10절의 말씀, “하나님이~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란 대목을 듣는 순간 말로만 듣던 ‘예수의 권능’이 크게 느껴졌고 그 권능이라면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기는 순간 온몸을 억누르고 있던 경직된 근육들이 일순간 부드럽게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거짓말 처럼 병이 나았다. 7년동안 의사조차 ‘스트레스성’이란 처방밖에는 내릴 수 없던 고질병이 일순간에 고쳐진 것.

그러나 기쁨도 잠시, 꼭 한달 후에 이번엔 박씨에게 간암선고가 떨어졌다.

정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잠시 혼동이 왔다. 이때 이미 하나님을 체험한 부인이 “걱정 말고 하나님께 맡기자”고 했고 박씨는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처방약을 쓰레기 통에 버렸다. 그리고 병원에 가지도 않았다.

간암선고 받은 며칠 후 예배 때 이번엔 박씨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찬송가(185장)의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너는 날 위해 무엇 하는가”란 대목에서 울음이 복받쳤다.

그리고 자신이 간암선고를 받아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걱정은 사라지면서 ‘얼마를 더 살든지간에 죽어서 하나님 앞에서 뭔가 하나님을 위해 했다는 말을 해야겠다’는 강한 의욕이 생기면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노방전도였다.

노방전도한 지 10개월 후 의사는 박씨의 얼굴을 보더니 “당신의 신앙이 승리한 것 같다”고 말했다.

병으로부터 똑 같은 기적을 체험한 박씨 부부는 ‘하나님이 돌려준 생명’을 하나님을 전하는 일에 사용키로 함께 마음을 먹었고 그 결과과 바로 ‘RV전도자’가 됐다.

이달말쯤 되면 이들 부부가 모는 RV는 “We love Jesus”란 팻말을 바람에 날리며 아리조나주를 지나 텍사스를 거쳐 계속 동쪽으로 달려가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