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챤 홈

Christian Home 2008년 4월 24일 목요일

● 아, 하나님의 은혜로 ●

– RV타고 복음 전하며 미주 전역을 누빕니다 –

신앙체험으로 사명 깨달아

박승목 · 박영자 집사 부부 (나성영락교회)

북미지역을 돌며 전도사역을 하며 헌신하고 있는 박승목·박영자 집사부부(나성영락교회). 그들은 지금 아리조나의 한 기도원에서 만나게 되었다.

현재 부부는 불타는 전도의 삶, 영혼을 사랑하는 주님의 지상명령에 따라 살고 있던 집을 팔고 RV (이동주택) 차를 구입해 전도여행을 하고 있다.

91년 알 수 없는 병으로 7년여를 고생하던 박영자 집사가 하나님 은혜로 고침 받고, 간암 선고를 받은 박승목 집사에게도 믿음으로 치유함을 간구하는 가운데 진정으로 영혼구원에 대한 열망을 확인하게 되었다.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너희 전대에 금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저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이 말씀처럼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채 복음을 전하며 다니는 부부를 통해 많은 믿는 이들에게 많은 도전과 은혜를 주고 있다.

“가지고 있는 것을 하나하나 버리는 것이 준비임을 깨달았다.”

2002년 6월 1일 샌디 에고를 시작으로 아리조나, 워싱턴 등지로 무작정의 자비량 전도여행을 떠난 박 집사 부부는 핸디맨으로 잡역을 하며 고생해서 장만한 집을 팔아서 RV (이동하우스) 를 마련하고 그 안에 쌀과 무, 고추장, 오이김치 등을 싣고 후원자도 없이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전도여행을 떠났다.

부부는 초청하는 교회에서 간증집회를 하고 실족한자들을 찾아 회복시키며 때로는 가정 마다 고장 난 물건을 고쳐주며 안 믿는 자들에게 말씀을 전하며 바울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박승목 집사는 나성영락교회 에서 “91년 ‘6.30 예수 초청 잔치’ 때 간암선고 받고

조금 남은 생명을 주님 위해 사용 받다가 천국가기를 소원하고 주님의 물음에 답변 할수있는 삶을 살기로 결단 했습니다”며 전도여행 계기를 말했다.

건강을 회복한 두 부부가 이후로 9년 동안 전도폭발 훈련자로 경험을 쌓으면서 하나님께서 전도에 대한 열정을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계기가 되었다.

“전도에는 성공과 실패가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시간이 걸릴 뿐, 안 되는 것이 아니지요. 우리는 심고 물을 주나 자라나게 함은 하나님이시지요.

그러므로 전도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 쉬운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씨를 뿌릴 뿐 성령님이 하시기 때문 이지요”

예수님의 지상명령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입을 크게 벌려 예수이름의 능력을 전하라’(마28:18-20)는 말씀을 기억하며 정든 집과 사업을 정리하고 떠났던 박 집사 부부는 주신 믿음을 가지고 가는 곳곳마다 교회마다 간증과 전도의 삶을 전하고 있다.

홍해를 건너 광야에서 40년의 연단과정을 거친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태평양을 건너온 부부에게도 불같은 시험과 연단의 시간들이 연속이었다.

그 가운데서 순간순간 주님께서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봐 주시며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해 주셨다.

미신과 불교를 믿는 가정에서 태어나 굿판을 보며 성장했던 두 사람이 예수를 믿기까지 집안에서 일어났던 여러 가지 우환은 이루 표현할 수가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병원으로 뛰어야 하는 병약한 아이들과 가정부와 시누이, 사촌여동생의 정신착란과 자살, 거듭되는 사업실패는 그 동안 헌신적으로 믿어 왔던 불교에 대해 회의감이 들면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지게 된다.

80년 1월 둘째 주부터 참석하기 시작한 교회 예배에서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던 박승목 집사의 교만을 꺾기라도 하시듯 그 다음날 새벽부터 누렇게 찌들어 악취나는 화장실을 닦기로 결심했고 그때부터 날마다 성전 청소하는 일로 기쁨을 갖게 되었다.

“80 민족복음화 대성회” 여의도 광장에서의 ‘나는 찾았네 새 생명’ 집회에서 당시 11살 이었던 큰아이는 목사, 박승목 단기선교사, 박영자 집사는 중보 기도하는 어머니가 되겠다고 서원하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했고 82년 유학생비자를 받아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되었다.

미국에 첫 발을 디디던 때를 회상하던 박영자 집사는 “영적인 축복을 말 할 수 없이 주셨지만 어려운 생활은 돌보아 주시지 않는 것만 같았다”며 이민 초기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마음껏 고기를 먹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밤이면 깡통 줍고 마켓 쓰레기통에 버려진 야채와 과일을 주어다 먹어도 기쁘고 감사했다”고 말했다.

어려운 이민생활과 지독한 가난, 연속되는 육신의 고통에서도 영혼구원에 대한 열망을 놓지 않았던 두 부부의 기대에 부응하듯 어려움 속에서 성장한 큰 아들은 하버드대학교를 나와 신학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EM전도사로 부르셨고, 작은 아들은 조지워싱턴 대학교를 나와 의사로 근무하고 있다.

“우리 부부가 지나가고 머무는 그 땅에 하나님의 관심과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이 뿌려져서 전도의 문이 열리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기도할 것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거듭나지 못한 영혼들에게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게 하는 것과 미주 전 지역 과 캐나다 등 330개 교회에서의 간증을 했고 박집사 부부는 각 지역의 병원과 양로원에서도 예수의 이름을 전하고 있다.

이런 전도사역을 통해 평신도들의 마음에 노후의 삶에 대한 도전이 되기를 기도한다고 한다.

동갑내기인 박 집사 부부 올해 65세 “집에서도 죽지 말고 병원에서도 죽지말자는 것이 저희들의 각오입니다.

천국에서 내 몸을 희생 했건만 너 무엇 하느냐? (찬송가 185장) 물으실때 ‘조금 전까지 복음을 증거 하다가 왔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저희들의 소원 이기도 합니다.” 순교자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 박집사 이야기다.

“교회에서 간증을 하며 다녀보면 각 교회들의 전도에 대한 관심은 아주 미약하다”고 결론을 내리는 부부는 “교회 안에서 자기들만 모여 교제 하고 자기들만 사랑을 하는 모습이고, 밖으로 전도에는 많은 관심이 없음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전했다.

2002년부터 지금까지 몇 교회의 선교헌금(한달에 600불)을 지원받으며 하나님의 사랑의손 길로 공급해 주시는 기적을 통해 살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삶을 몸으로 실천하는 박승목 박영자 집사의 가는 곳곳에 간증을 통해 많은 크리스천들에게 전도에 대한 도전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