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신문

기독신문 기획 2003년 10월 10일(금요일)

믿음으로 사는 사람 박승목·박영자 집사 부부

“RV는 복음을 싣고”

집·비즈니스 팔고 남은 여생 미주 전역 전도에 바치기로 1년 4개월째… 서북미지역과 캐나다 지역서 집회·노방전도 나서

글 •김은희 기자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정리하고 홀연히 떠날 수 있다면, 그것은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나 있을 법한 일이다.

아니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 해도 이 땅 위에 자신의 채취를 남기고 싶어 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하지만 21년 전 미국에 들어와 온갖 고생을 하며 얻은 집과 비즈니스 등 자기 소유의 모든 것을 처분한 박승목·박영자 집사 부부는 ‘죽음’에 직면해 있지도, 자신의 것을 남기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오히려 순례자로서의 새 삶을 ‘소망’하고, 자신들 인생의 족적을 지워 가며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렇듯 박 집사 부부는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전부를 얻는’, 그 믿기 어려운 삶을 시작한 것이다.

목회자를 울리는 평신도

RV를 타고 미국전역을 누비며 한인들을 상대로 전도를 시작한지 1년 남짓, 지난 서북미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열린 박 집사 부부의 시애틀 지구촌 교회 집회는 말 그대로 은혜와 감격의 눈물이 바다를 이뤘다.

집회를 인도하던 김성수 목사마저도 기도 중에 목이 매여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김 목사는 집회 말미에 “전부를 바쳐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평신도 앞에서 목회자로서 부끄럽다”고 고백했다.

목회자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평신도. 그들은 누구인가.

불교 신자가정의 2가지 서약

박 집사 부부는 1970년대 한국에서 계속적인 사업실패와 가난에 시달리고, 그칠 줄 모르는 가족과 주변의 불행을 목격하며 자살을 결심 했으리 만큼 처절한 삶을 보내고 있었다.

미신과 불교의 불 분명한 선을 넘나들며 가정의 안위만을 놓고 두 손을 모으던 이들은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었다.

절망의 세월 속에서 박영자 집사는 TV에서 우연히 ‘하나님’이라는 신(神)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혹시 그 하나님 신이 뭔가 해답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교회에 찾았다.

하지만 남편의 첫 교회출석 소감은 ‘이 큰 교회의 화장실이 왜 이렇게 더럽냐’는 것이었다. 남편은 그날부터 시키지도 않은 화장실 청소를 시작했다.

새벽기도회에 나가서도 하는 일은 교인들 눈에 띄지 않게 화장실을 포함한 교회를 청소하는 일이었다.

이 가정의 일대 기독교적 회심은 1980년 여의도광장에서는 100만명이 운집했던 ‘나는 찾았네, 새 생명을’ 이라는 집회에서 일어났다.

마지막 날 집회, 끝 순서에는 2가지 서약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해외선교사역’과 ‘사역자지원’.

목사와 함께 집회에 참석했던 박승목 집사는 해외선교사역을 서언했다.

이때 다른 곳에서 박영자 집사와 함께 있던 11세의 큰아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서약했다.

‘사역자 후원’ 요청에는 아들이 “우리 집에 가진 것은 없으나 나를 위해 중보기도 후원은 가능하다”며, 엄마를 일으켜 세웠다.

한날 한시 네 식구 모두가 기독교 사역을 다짐한 것이다.

미국에 가면 잘 살 수 있다?

“그날부터 저희 가정에 하나님의 간섭이 시작됐습니다.”

매일같이 새벽기도와 철야기도가 이어지는 등 무릎을 꿇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이 무렵 성령을 체험했으며,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자로 변화시켜주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박 집사 부부에게는 아직도 ‘물질의 축복’만이 축복이었다. 여전히 생활의 곤란을 겪던 이들은 ‘미국에 가면 잘 살 수 있다’는 주변의 말을 듣고 미국행을 결심한다.

박승목 집사는 우여곡절 끝내 1982년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땅을 밟은 후, 캘리포니아주 샌디에고에 정착했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생활은 한국보다 더 힘들었다. 얼마 안 되는 수중의 돈마저도 영주권을 빌미로 접근해온 사람에게 다 잃었다.

늦은 밤이면 미국 마켓 뒤에 버려진 음식들을 줍기 위해 밤거리를 헤매기도 했다.

박집사 부부는 이 와중에서도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알았다고 말한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온 가족이 미국 땅으로 인도되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한 미국인 회사에 노동자로 고용된 박승목 집사는 사장으로부터 성실한 자세를 인정받아 근무를 시작한지 8개월 만에 관리직으로 특채된다.

하지만 더 오랜 근무경력을 가지고 있떤 동료 한인이 질시를 해, 영주권이 없다는 것을 신고하겠다고 협박을 해오기도 했다.

이처럼 직장생활은 물론 교회 안에서도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병 주고 약 주신 사랑의 하나님

예기치 않았던 일들로 박 집사 부부는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다.

박영자 집사가 중병에 시달리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내장이 뒤틀리고 순환기가 막히는 질병이었지만 특별한 병명도 없었다.

몸 안에 가스가 차 올라 배는 임산부처럼 부풀어 올랐고, 극심한 두통과 빈혈 등의 합병증으로 급기야는 쓰러져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의사조차 ‘스트레스성’ 이란 말만 반복할 뿐, 치료에서 손을 떼는 중대한 상황이었다. 계속되는 치유집회 참석과 철야기도에도 별다른 호전이 없자, 박 집사 부부는 ‘환경을 바꿔보라’는 의사의 마지막 권유에 따라 아무 연고도 없는 LA Northridge 지역으로 거처를 옮겼다.

박승목 집사는 다시 이민 초기의 밑바닥 생활을 시작했다.

닥치는 대로 막노동을 하면서도 밤늦도록 아내의 아픈 몸을 주무르며 간호하는 힘든 생활이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박영자 집사는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는 요한계시록 2장 말씀을 통해 깨우침을 주셨다.

그는 아픈 몸을 이끌고 7년 동안 빠짐없이 드린 예배와 기도가 자신을 향한 열심이었을 뿐 하나님을 향한 첫사랑을 지킨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또 주님께서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게 하셨다고 고백한다.

이 모든 것을 깨우친 그는 정말 기적 같은 치유를 받았다.

그러나 그 치유의 감격이 잊혀지기도 전에 박 집사 가정에는 또 하나의 기적이 예비되고 있었다. 이번에는 남편이 간암선고를 받은 것이다.

당황했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박 집사 가족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에 있다는 것을 이미 뼛속 깊이 체험했던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무소유 전도자의 인생행로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믿음을 전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날 수도 있다는 절박감 때문이었다.

기도와 찬송으로 간암치료를 대신 할 때, 찬송가 185장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 주느냐 네 죄를 대속했건만 너 무엇하느냐”는 구절이 가슴에 박혀왔다.

그는 통곡하며,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사는 동안에 오직 예수님을 증거 하는 삶을 살겠다”고 결단했다.

이때부터 박 집사 부부의 ‘전도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삶’이 시작됐다.

LA공항 양로원·병원·대학교정 등 한인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이 그들의 삶 전부가 되었다.

체계적인 전도폭발 훈련을 받고 노방전도에 나선 지 1년후 길에서 우연히 만난 의사로부터 얼굴의 혈색을 보고“당신의 신앙이 승리한 것 같다” 얘기를 들었다.

아무런 치료와 약 처방도 없이 믿음으로 암을 극복 하게 되었다.

이처럼 막다른 삶의 길목에서 하나님의 개입을 절감했던 박 집사 부부의 신앙생활은 더욱 더 굳건해질 수밖에 없었다.

부부는 전도를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했다.

1998년 기도 중에 미주 전 지역을 향해 나가라는 비전을 받았고, 이것을 이루기 위해 4년여에 걸쳐 기도하며 철저히 준비했다.

레저용 차량 RV 에 남은 여생 과 복음을 싣고 떠나기로 한 것이다.

돌아갈 살곳이 있으면 마음이 약해질까 봐 집도 팔고, 비즈니스도 정리했다.

2002년 6월의 1일이때부터 오늘까지 이들은 길 위에 있었다.

어쩌다 지나치는 길에 만나는 자식들과 대화를 나누다가도 잠잘 시간이 되면, 길에 세워놓은 RV로 되돌아 올 만큼 철저한 생활을 하고 있다.

어려움이 적잖지만, 이들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채워 주신다는 것을 믿고 아무런 염려 없이 오늘도 한 영혼을 만난다는 설렘으로 길을 떠난다.

끊임 없는 연단 속에 인생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줄 알게된 60세 동갑 부부의 표정은 흉내 낼 수 없을 많큼 맑고 또 밝았다.

‘하나님을 통해’ 얻은 새 삶을 ‘하나님을 위해’ 쓰겠다는 겸허한 마음.

그 마음을 비추는 이들의 끝인사가 아름답기만 하다.

“집이나 병원에서 죽지 않겠다고 결심한 저희 내외는 떠날 때보다 더 건강한 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빚 갚기 위해 떠난 길에 저희는 하나님 사랑의 빚 더욱 진 자가 되었습니다.

박집사 부부의 RV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것처럼 여유로운 삶의 표징이 아니다. 그것은 움직이는 집이요, 교회이며, 기도원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 것을 ‘온전히’ 주님께 내맡기고 대신 복음을 움켜 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움직이는 천국이다.

지금 캐나다를 달리고 있는 그 RV 천국이 다음 주 시애틀에 잠시 멈춰 설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