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 타임스 연재. 제260회.

“생명을 연장해 주신 주님께 감사”
호랑이가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이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크리스천은 죽으면 무엇을 남겨야 합니까?
크리스천은 죽어서 믿음을 남기고 또 내가 전도한 영혼을 남겨야 합니다.
미국에 온 지 9년 만에 ‘당신 간암으로 죽는다’는 선고 앞에 너무나 당황스러웠습니다.
찬송가 311장을 부를 때 예수님께서 ‘내 몸을 희생 했건만 너 무엇 하느냐? 네 죄를 대속했건만 너 무엇 하느냐? 이것이 귀중 하건만 날 무엇 주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답변을 할 수 없어 회개의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한 참을 울고 난 후 갑자기 눈물이 바뀌어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그 기쁨은 아직도 병약한 몸이지만 생명이 있고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는 몇 달이 있기에 넘치는 감사였습니다.
지난날의 허물된 모습을 보시지 않고 지금 나의 모습, 미래에 변화될 모습을 보시는 하나님을 알기에 너무도 감사하고 기뻤습니다. 이제 제가 할 일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지 주님께 기도했을 때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영혼 구원과 전도였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받고자 원하셔서 제게 물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 길인 까닭에 우리를 일깨우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새 계명을 주시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웃이 어려울 때, 아플 때 사랑하는 것도 귀하지만 육신의 어려움을 돕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4복음서의 결론은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 하셨고 또 증인의 삶을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때론 교회로 인도하는 것에서 전도의 일을 마쳤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교회로 인도하는 것도 매우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일을 마쳤다고 안주하는 것은 태만이며 맡은 자의 사명을 끝까지 다하지 못 한 것입니다.
전도와 인도는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수님을 소개하고 전하며 증거자의 삶을 살 때 우리의 영혼에 기쁨이 있고 하나님의 깊고 놀라운 사랑을 더욱 깊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삶을 주님께 맡기고 전도를 준비했습니다.
세상일을 준비할 때는 계획을 세우고 필요한 것을 준비 했지만, 주의 일을 준비할 때는 아낌없이 다 버리는 것이 준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 오너라 부르실 때에 아비와 그물을 버리고 따라 간 것 같이……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전대를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셔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했지만 가장 순종하기 어려운 것은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주의 길에는 오직 순종하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너무나 어려웠지만 그것까지 순종했습니다. 우리의 삶이 바뀌어야 합니다. 두 마음을 품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이 천국과 세상의 물질 사이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도의 길을 나서며 집이 있으면 돌아와서 편하게 쉬다가 전도의 마음이 사라질까 두려워 집을 처분했습니다.
세상의 어느 것보다 내가 붙들어야 할 것은 주님이심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두 아들이 있지만 아들의 집에 가서도 자지 않겠다고 선포했으며 험난한 길임을 알면서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RV에 복음을 싣고 사역에 임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복음을 전도할 때 너무나도 기뻤지만 Gas 값이 없어 달리지 못하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차를 세워 핸들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눈을 뜨고 보니 유리창 앞에 봉투가 끼어 있는데 Gas 값이 들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순종하는 것이지 물질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시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RV 사역을 하며 가장 필요한 것이 물과 주차장입니다. 씻는 것이 불편하지만 소중함과 감사함을 알게 하셨습니다. 잠자리는 주로 월마트 파킹장을 이용합니다. 상당히 불편하지만 육신의 삶이 전부가 아니기에 하늘의 평강을 누리며 기쁘게 살고 있습니다.
또 ‘RV 타고 다니며 구경 다닌다’고 비양 거리는 사람도 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억하며 묵묵히 사역하고 있습니다.
복음 전파와 전도의 일을 감당하는 길이 평탄한 길 만은 아닙니다. 사단의 많은 방해가 있습니다. 토네이도와 같은 환경의 어려움도 만나고 사막에서 나쁜 사람들에게 포위되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RV 차를 향해 권총으로 쏘기도 합니다. RV는 뚫을 수 있었지만 십자가의 복음은 뚫을 수 없기에 복음은 계속 전파됐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로마까지 가려고 할 때 아무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약할 때 곧 강함이라고 하셨는데 하나님의 능력을 쫓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하셨던 말씀에 의지합니다. 그 때 불꽃 같이 지키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바울은 사형선고를 받고도 로마에 복음을 전하겠다는 목표가 있었기에 죽기까지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이 땅에서 죽으면 무엇을 가져갈 수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도 가져갈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전도한 영혼의 이름을 가져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이며 기쁨이나 자랑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소망이 있다면 주님 앞에 갔을 때 바로 전도한 영혼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세상에서 무엇 하다 왔느냐’고 물으실 때 허무하게 사라질 세상의 부와 명예를 좇다가 왔다고 말씀드리겠습니까?
놀라운 것은 전도가 은사인 줄 알았는데 전도는 의무입니다. 전도는 명령입니다.
또 명령이지만 때로는 명령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에 순종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전도는 우리의 능력이 아니고 우리의 순종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며 하시는 말씀이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십니다. 전도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을 사랑하고 십자가 복음을 선포할 수 있는 권능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이 생명인데 생명 보다 귀한 것이 복음 증거 하는 사명입니다.
가장 귀한 일이 있다면 영혼을 살리는 일입니다.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던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길 소원 합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사도행전 20:24)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고 지금까지 생명을 연장해 주셔서 많은 영혼을 주님께 올려 드리게 하신 우리의 주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