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 타임스 연재. 제166회.

“전도를 두려워하는 믿는 자들”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로마서 10:15)
하나님의 은혜로 쉼 없이 전도 현장에서 만나는 영혼들의 구원과 문제들을 끌어안고 씨름을 할 때마다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나타났습니다.
날이 갈수록 사역 안에 일어나는 아름다운 결과들이 있어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 기쁘지만 육신은 사단의 공격으로 괴로운 밤을 지냈습니다.
전에 당한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목의 신경이 눌려서 오는 통증이 어깨와 팔로 내려와서 손끝까지 저리고 아파서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통증이 심해서 병원에 갔더니 물리치료를 해보고 좋아지지 않으면 목 수술하는 수밖에 없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얼마동안 물리 치료를 받았지만 그때뿐이고 통증으로 밤마다 잠을 못자는 것을 보고 모두들 수술은 받지 말라는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목 수술이 잘못되면 오히려 평생 고생을 한다고 중보 기도해 주시는 분들도 똑같이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밤잠을 설치기 때문에 낮에는 기운을 차릴 수 없지만 보내 주시는 곳에 가서 사역을 하다보면 어디서 기운이 나는지 통증도 느끼지 않고 충만해 지곤 했습니다.
집회를 했던 교회마다 많은 기도를 해 주셨고 그 대단한 중보 기도의 힘으로 저희가 이렇게 승리하며 사역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태복음 18:19)

뉴저지에서 메릴랜드를 향해 내려가다가 교통체증이 심해서 Rest area에 쉬었다 갈 겸 컴퓨터를 켰는데 이메일 와 있었습니다.
일정이 허락하면 오후 1시에 예배드리는 작은 교회지만 주일날 간증을 부탁하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진정 주님의 부흥을 소원하는데 많이 힘이 들고 갈 바를 알 수 없습니다. 집사님들의 사역이 방향 제시를 할 줄 믿고 초청하고자 합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겸손하시고 진실한 마음으로 부족한 저희를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찡한 감동으로 운전대를 돌려서 다시 뉴저지로 올라갔습니다.
목사님과 사모님은 외모가 너무 세련 되셨고 목회에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으로 생각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보였습니다.
목회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교회의 본질은 복음을 전하는 전도입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우리의 가슴에 살아 있어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목사님 내외는 복음적인 목회 방법을 세우고 열심히 사역을 하시지만 십자가의 복음을 받았다는 성도님들은 행동이 뒤따르지 않고 성전 뜰만 밟고 다니는 수준이라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경제 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고 있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하여 만족한 것은 아닌데 영적 불감증인지 자신들의 영혼에 대해서 무관심한 듯 보였습니다.
세상 지식에 있어서는 굉장히 똑똑하고 모르는 것이 없는데 영적인 면에 있어서는 감각 자체가 무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성령 체험이 없어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영적 민감성이 없어 하나님 일에도 무관심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린도전서 2:14)
성령은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십니다. 그래서 구원의 사건과 십자가가 이해되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이 깨달아지고 진리에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영적 감각이 무디어져 있으면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영적인 어린아이와 같은 성도들에겐 기초가 필요하고 무조건 단단한 음식을 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에 우리의 삶의 간증만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사모님께서 노방전도와 관계전도에 대해서 배우고 싶다며 사모모임이 있는 날에 다시 와 달라는 부탁을 하셨습니다.
목사님과 사모님은 얼마나 다정다감하신지 오히려 우리가 은혜를 받고 그 교회에 성령의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며칠 후에 오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사모모임을 항상 그 교회에서 한다고 하여 정한 날에 갔는데 어느 때 보다도 많이 모이지 않았다고 미안해 하셨습니다.
모임에 잘 나오시던 사모님들이 전도 강의를 한다니까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더니 두려움 때문인지 결국 나오지 않은 것이라고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사단은 언제나 영혼 구원하는 일 만큼은 어떠한 구실을 통해서라도 막 아야 하기에 모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모아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브리서 10:25)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구원의 확신만 있다면 모든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이 좋은 성도일지라도 두려워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전도입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전도하기를 두려워할까요?
전도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으면서도 전도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상대방이 곤란한 질문을 하면 어떻게 대처하나 하는 우려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적인 생각일 뿐이지 복음을 전하는 동안 그 어떤 논쟁이나 곤란한 순간에도 성령님을 의탁하기만 하면 그 때마다 할 말을 주시기 때문에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 라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마가복음 1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