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 타임스 연재. 제74회. RV에 복음을 싣고

“서로 용납 하기를”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시편 84:10)

고 집사님은 세상의 눈엔 여전히 이룬 것이 없으며 그저 평범한 보잘 것 없는 삶일지라도 어제보다 오늘 더 하나님을 사랑하는 예수쟁이가 되겠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주의 집에 사는 자는 주께 힘을 얻고 시온의 대로를 열어 주신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날 우리의 간증을 듣고 은혜를 많이 받았다는 최집사님이 다른 교회 교인들이 문제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며 만나기를 원한다고 해서 만났습니다.

저녁 8:30분에 모일 수 있다고 하여 거리는 멀지만 찾아갔습니다.

듣고 보니 다니고 있는 교회에 대한 불만으로 너무 속상하다고 울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은혜를 받으며 헌신하고 싶은데 목사님 말씀에 은혜는커녕 시험 들어 짜증이 나고 괴롭다는 것입니다.

자신들 뿐 아니라 많은 교인들이 그런 상태에 있고 교회에 나가자니 괴롭고 떠나자니 마음이 편치 않아 진퇴양난이라고 했습니다.

전부터 말썽이 많던 교회였는데 그 교회 집사님이 늦게 신학을 하시고 안수 받아 담임 목사가 되신지 5년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하나님 중심의 설교가 아닌 사람 중심의 설교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설교를 통해 목사님이 하시고 싶은 말을 분노를 담아하시기에 교인들이 상처를 받아 마음속에 불만과 짜증이 나서 집에 돌아와서 가족들에게 자신들도 모르게 분을 내어 관계가 나빠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는 것인데 영혼의 만족이 없어 갈급한 심령들의 아우성으로 들렸습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집사님들 그 담임 목사님을 위하여 얼마나 눈물로 기도를 했습니까?”

목사님 나름대로 영적 정신적 또는 경제적인 어떤 고갈 상태에 있을 수도 있기에 교인들은 담임목사님 위하여 기도를 열심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메마르거나 사역의 결과에 대한 부담으로 엄청난 스트레스에 눌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이 해야 할 모든 일 가운데 영적자원이 부족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아모스 8:11)

하나님의 말씀의 공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 영혼의 만족이 없다고 호소하는데 설교자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는 없습니다.

내 영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이기에 소극적으로 말씀의 공급을 기다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말씀을 공부하고 묵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 묵상을 통해 영적으로 힘을 얻고 어떤 상황에서도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기도하는 자의 자리에 있어야 하나님께서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디모데전서 2:8)

또 개척하신지 얼마 되지 않은 교회 목사님께서 우리의 소식을 듣고 불러 주셔서 간증을 하게 되었는데 어떤 부흥회보다 더 은혜의 시간이었다고 극찬을 해 주셨습니다.

목사님은 서울대학을 사모님은 이화여대를 나오셨고 결혼 후 잘 살고 계실 때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치 않으셔서 많은 고난을 겪으셨다고 하셨습니다.

10년의 광야 생활을 하시며 빈손 들고 하나님께 굴복하여 신학을 하시고 목회를 하고 계셨습니다. 고난가운데 많은 체험을 하셨기에 말씀에 은혜가 있었습니다.

사모님과 노방전도하시면서 믿지 않고 방황하는 사람들을 양육을 하고 계셨는데 아직 영적으로 어린아이 같은 교인들이라 많이 힘들어 하셨습니다.

이민 삶의 어려움에서 오는 불만 때문에 신앙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하며 가정불화로 고통하는 가정이 있다고 하여 방문을 하였습니다.

밤이 늦도록 대화했는데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성숙되지 못해 서로 갈등하며 벽을 쌓고 지내고 있었습니다.

사단이 계속 부채질 하는 것도 모르고 그들은 흑백론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며 서로 다투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생각과 성격이 서로 다를 뿐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오는 현상입니다.

내가 살아온 경험과 생각으로 판단하려 들기 때문에 의견의 일치가 없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부터 더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책망도 하고 위로도 하며 계속 반목하며 살 것이 아니라 남은 생애를 이해하고 사랑하며 살 것을 권면했습니다.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남편 집사님은 속으로 불만이 쌓여 우울증까지 생긴 상태였습니다.

고자세인 여자 집사님의 뻣뻣한 모습이 수그러들면서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며 눈물을 흘리는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앞으로 주안에서 서로 용납하고 포용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곧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고 감사하며 기뻐했습니다.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고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골로새서 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