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 타임스 연재. 제172회.

“복음이 전파되는 곳, 기쁨도 전파 된다”
뉴햄프셔에서 사역을 마치고 시카고를 향해 가는 90번 도로는 유료도로이므로 아주 깨끗하여 운전하기엔 너무 좋았지만 돈이 많이 들었습니다.
달려가는 길 주변의 경치를 보면서 가을이 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는데 끝도 없이 펼쳐진 옥수수 밭과 콩밭의 열매들이 잘 여물어 가고 있었습니다.
빨갛게 노랗게 물든 예쁜 단풍이 보이는 길을 RV로 달리면서 감개무량하고 행복한 것은 복음을 싣고 가는 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며 사역에서 오는 기쁨도 있지만 다음 사역지를 향해 달리면서 경치를 보며 만끽할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지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주 찬송하는 듯 저 맑은 새소리 내 아버지의 지으신 그 솜씨 깊도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아침 해와 저녁놀 밤하늘 별들이 망망한 바다와 늘 푸른
봉우리 다 주 하나님 영광을 잘 드러내도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산에 부는 바람과 잔잔한 시냇물 그 소리 가운데 주 음성
들리며 주 하나님의 큰 뜻을 내 알 듯 하도다“(찬송가 478)
하나님 지으신 산촌의 아름다움을 보며 우리부부는 목청을 돋우며 마음껏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RV가 달려가는 길 위에 예수님의 보혈이 뿌려져서 오가는 수많은 영혼들이 주님을 알고 믿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볼 때 자연 속에 계시하시는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며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핑계치 못할 것이라”(로마서 1:20)
아름다운 대자연을 보면서 창조자도 없이 이 섬세하고 신비한 생명들이 우연히 존재한다는 것이 더 믿기 어려운 일이라 느껴졌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귀신들도 하나님을 믿고 떨기 때문입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야고보서 2:19)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 또한 믿어야 합니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음 1:12)
자연 속에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할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원한 생명, 즉 천국을 소유하는 복을 우리는 모두 받아야 합니다.
자연계시에는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그리고 깊고 오묘한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 담겨져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기쁨과 감사도 있지만 영적전쟁으로 인해 오는 육신의 피곤함은 어깨 통증으로 밤잠을 설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 오실 날이 가까이 옴을 느끼며 주님의 영광을 위해 최선을 다 하는 것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로마서 9:16)
부족함에도 복음을 위해 다닐 힘과 능력을 주시고 곳곳에서 성령의 역사하심을 경험케 하시는 것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집회를 하게 되었는데 4년 전에 현대식으로 아주 잘 건축한 교회에서 성도들이 너무 행복해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기쁨으로 은혜롭게 신앙생활을 하는 교회가 그리 흔치 않았습니다.
교회 옆 넓은 빈 땅에 실버타운을 건축해서 노인들이 새벽기도도 드리며 편안하게 사시도록 해 드리고 선교관도 착공을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서로 하나 되어 아름답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너무 중요하지만 전도하지 않아도 교인들이 모이기 때문에 전도를 하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성도들을 훈련하여 전도하며 제자로서의 삶을 살도록 할 때 기쁨과 감사가 더욱 넘치고 성령 충만한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들 같이 한 사람이라도 영혼 구원하도록 하며 전도하는 삶이 얼마나 기쁘고 보람된 일인가를 경험케 해야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핍박을 생각하며 나가서 전도해야 합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오순절 이후 급성장했으나 복음을 널리 전하는 일에는 관심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 때 스테반 집사의 순교로 교회의 박해를 통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교회를 흩으셨으므로 각 곳으로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에 열심 있는 사울이 교회를 진멸하려는 사명감에 불타서 다메섹으로 가던 중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 후 바울이란 이름으로 순교하기 까지 복음을 전하며 살았습니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디모데전서 1:13)
사마리아 성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을 때 그 성에 기쁨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처럼 기쁨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고 복음이 주는 기쁨을 여러 곳에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역사이고 우리를 향한 주님의 명령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성령의 도구가 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 예수 사랑하리라 나의 생명 다 할 때까지……”
우리는 목청껏 주 예수 사랑한다고 찬양을 하지만 찬양을 한 대로 살지 않고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갈 뿐입니다.
지난날 나 역시 얼마나 많은 세월을 나만을 위해 살아 왔는가를 회개하며 이제라도 주님의 영광을 위해 이 생명 드리겠다는 각오로 오늘도 복음 들고 순례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